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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두 달만에 퇴사 결심"...변하지 않는 간호사 ‘태움’

입사 2개월 차 간호사 A씨는 병원 내 인간관계 때문에 퇴사를 고민 중이다.  A씨가 일하는 병원에는 신규 간호사들이 들어오면 그 중 한 명을 집중적으로 ‘태우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

그는 “업무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쟤는 또 일을 지 멋대로 하고 있네’라며 면전에 대고 심하게 욕을 한다”고 설명했다. 선배들은 ‘미친X 같다’ ‘꼴도 보기 싫은 X’이라며 폭언도 서슴지 않는다고 했다.

간호사 B씨도 대학 병원 입사 2개월 차다. B씨는 “작은 실수도 환자의 생명에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충분한 사전 교육 없이 업무에 투입된다”고 말했다. 환자가 잘못되면 온전히 B씨 책임이지만 현장에선 선배에게 질문조차 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B씨는 “모르면 물어보라고 해서 물어봤는데 ‘그것도 모르냐’, ‘그런 거 물어보는 사람 네가 처음이다’ 라는 말을 들었다"라며 "부담감에 출근하면 숨이 막힌다. 퇴사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지난 2018년 故박선욱 간호사·故서지윤 간호사의 죽음으로 병원 내 괴롭힘인 ‘태움’이 알려졌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선배 간호사가 신규 간호사에게 교육을 명목으로 가하는 괴롭힘이다.

이들의 사망은 산업재해로 인정받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간호사들은 현장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반응이다. 신입 간호사들은 충분한 교육 없이 업무에 투입되고 간호사들의 업무 과중이 태움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여전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규 간호사 2명 중 1명은 퇴사

병원간호사회가 올해 발표한 ‘병원 간호인력 배치 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신규 간호사 이직률은 44.5%였다. 2018년 42.7%, 2019년 45.5%로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간호사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보니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업무가 과중한 상황"이라며 "선배 간호사들이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다보니 신규 간호사에 대한 교육도 잘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러다보니 후배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태움과 같은 현상도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간호사 1명당 담당하는 환자 수는 매우 많은 수준이다. 대한간호협회가 발간한 '2020 간호통계연보'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료 기관 근무 간호사 수는 3.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9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간호사 한 명이 맡은 환자는 굉장히 많고 현장에선 작은 실수가 환자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며 "그러다보니 교육이 엄격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태움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 신설...전문가 “효과 있을 것”

 

 

(사진=이미지투데이)


간호현장을 좀 더 면밀하게 관리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간호정책과를 신설할 예정이다. 지난달 26일 복지부는 간호정책과 신설 내용을 담은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사실 보건복지부가 간호사 근무 환경 및 처우 개선 대책을 발표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2018년 3월 간호사 근무 환경 및 처우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간호 서비스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를 개선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수익금을 간호사 처우개선에 사용토록 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또 바람직한 간호사 교대근무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것도 대책에 포함했다.

하지만 처우개선을 위한 별도의 예산은 편성하지 않고 권고에 그치다보니 현장에서는 변화를 실감하지 못했다.

10년차 대학병원 간호사 D씨는 "보건복지부에서 대책을 마련했다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그는 "간호 인력 확충을 위한 재정적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이를 위해선 정부가 부서에 인력 충원을 위한 운영비 정도는 지원해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간호정책과 신설을 통해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간호정책과 신설로 보다 체계적으로 간호 현장을 관리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는 간호정책과 신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보건복지부 내에 간호정책에 관심을 갖고 정식으로 논의하는 구조가 공식적으로 마련됐다. 다양한 정책 제안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간호 업무 명확히 규정할 ‘간호법’ 필요해

정부의 노력 외에도 제도적 보완책 마련도 추진 중이다.

최연숙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3월 25일 의료법에 간호 인력의 업무를 규정하는 내용의 간호·조산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최 의원은 "현행 의료법은 간호업무 영역을 의료기관과 일부 보건활동으로 제한하고 있다"며 "달라진 보건 환경 속에서 효율적이고 적절한 간호 돌봄 서비스가 체계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간호·조산법을 제정해 간호 관련 법적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발의배경을 설명했다.

법안은 간호사를 비롯한 간호 전문 종사자들이 근무환경과 처우 개선을 요구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했다. 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간호사들과 협회는 간호·조산법안을 바탕으로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 및 처우 개선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을 기대한다는 반응이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돌봄 문제가 중요해졌다. 이에 간호 인력의 중요성도 커졌는데 기존 의료법은 이를 반영하지 못했다”며 “간호법이 제정되면 정책 추진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간호사들도 간호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A씨는 “병원마다 신규 간호사 교육 기간과 내용이 제각기 다르다"며 "간호법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마련한다면 환자들에게도 양질의 간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입사 한 달 차 간호사 E씨도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들의 근로 조건과 업무 환경이 개선될 수 있고 태움 방지를 위한 인성 교육도 실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도 간호·조산법안이 제정된다면 병원 현장에서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단 간호·조산 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선 의료법·국민건강보험법·지역보건법 등의 법안 개정도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직적·위계적인 병원 문화 변화해야

법안 통과와 함께 태움 개선을 위해선 병원의 위계적인 문화가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병원 내에선 효율성을 위해 태움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인식이 공공연하기 때문.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의료 업무는 인명을 다루는 일이라 윗사람의 지시가 내려지면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윗사람이 지시했을 때 아랫사람이 망설이지 않고 따르는 위계 구조가 있어야 업무의 효율성이 증대된다는 인식이 고착화돼 있다“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태움 개선을 위해선 수평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냅타임 권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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