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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충·잼민이·결정장애도 혐오표현입니다”

“결정장애·김치X·진지충 같은 말이나 엄마 욕을 하는 혐오표현을 일상적으로 접해요. 주변을 보면 친구들끼리 장난칠 때 아무렇지 않게 혐오표현을 씁니다. 추임새처럼 습관적으로 쓰는 친구들도 많아요.”

고등학생 박 모(19·여)씨는 평소 혐오표현을 자주 접한다. 박 씨는 과거 ‘급식충’이라는 말을 듣고 상처를 받은 기억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의견을 냈는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급식충이라는 말을 듣고 웃음거리가 됐다고.

그는 “급식충이라 무식하다고 욕하면서 모르는 것에 대해 알려주지도 않으니 황당하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은 성별·장애·나이 등을 이유로 비하하는 혐오표현을 접하고 위축됐던 경험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혐오표현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쉽게 사용하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혐오표현은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에서 시작되고 차별과 학교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방을 위해선 혐오표현 예방교육이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위 "청소년 10명 중 7명 혐오표현 경험"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5월 청소년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혐오표현에 대한 청소년 인식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에서 혐오표현을 접했다고 응답한 청소년들은 68.3%에 달했다.

혐오표현은 △성별 △장애 △나이 △인종 △성적지향 등 특정한 속성을 이유로 그러한 속성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을 비하하고 모욕하거나 차별을 정당화하는 표현을 말한다.

'온라인이나 실생활에서 혐오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는 23.9%가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혐오표현을 사용한 이유로는 △남들도 사용하니까 따라했다(57.5%) △재미있으니까 농담으로 사용했다(53.9%)고 답했다.

 

혐오표현 예시 (사진=국가인권위원회 '인권존중 학교를 위한 평등실천 혐오표현 대응 안내서')


 

실제로 청소년들은 일상적으로 혐오표현을 접한다는 반응이다.

중학교 2학년 김서연(14)씨는 "다양한 상황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혐오표현을 사용한다"며 "혐오표현이 친구를 부르는 호칭으로, 혹은 감탄사처럼 쓰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종·성적지향을 비하하는 혐오표현은 거의 매일 접한다”며 “청소년 성소수자로서 혐오표현을 들을 때마다 불쾌하고 상처를 받는다”고 전했다. 이어 “혐오표현은 소수자 집단에 부정적인 인식을 덧씌우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며 “실제로 혐오표현을 많이 접해 소수자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 친구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급식충·잼민이·결정장애도 혐오표현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많이 사용하는 '급식충·잼민이·결정장애'같은 표현도 혐오표현에 해당한다.

급식충·잼민이는 주로 나이가 어린 청소년들을 비하하는 상황에 쓰인다. 그들 사이에서는 이런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쓸뿐만 아니라 나이가 더 어린 청소년들을 비하할 때 쓰인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정모(18·여)씨는 과거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지만 지양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이러한 표현이 청소년들 사이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 정씨는 "중·고등학생들이 주로 초등학생들을 혐오하는 표현으로 이 말을 사용한다"고 했다.

고등학생 이모(18·여)씨도 "급식충·잼민이·결정장애 같은 표현이 문제가 있는지 몰랐다"면서도 “어린이라는 표현을 두고 왜 비하하는 의미를 지닌 잼민이라는 단어를 쓰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행동이나 태도를 정해야 할 때 결정을 내리지 상황이나 사람을 일컫는 ‘결정장애’도 혐오표현이다. 결단력이 부족한 모습에 '장애'라는 말을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함과 같은 속성을 장애와 연관 짓기 때문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관계자는 “이러한 표현이 차별이라고 지적하면 ‘비하할 의도가 아니라 장난친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장난으로라도 장애인을 열등한 존재로 묘사하는 표현은 지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혐오표현은 편견에서 시작...차별·학교폭력으로 이어져

혐오표현은 소수자에 대한 편견에서 시작되고 편견이 차별로이어질 수 있어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경기도 고양시 중학교에 근무하는 최 모 교사는 청소년들이 쉬는 시간에 장난으로 혐오표현을 주고 받는 모습을 접했다고 말했다.

최 교사는 "청소년들이 무리에서 재미있어 보이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의 말투를 따라하거나 장애를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종종 본다"고 했다. 이어 "많은 청소년들이 '급식충·잼민이·결정장애'같은 표현이 혐오표현이라는 사실을 모른채 유행어처럼 소비한다"고 설명했다.

최 교사는 "편견에서 시작돼 차별을 조장하는 혐오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짚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작년 12월 발간한 ‘청소년의 혐오표현 노출실태 및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에서는 혐오표현은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인 편견에서 시작한다고 분석했다.

연구를 진행한 김영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혐오표현이 학교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폭력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주요 원인"이라며 “혐오표현 예방교육은 학생들이 소수자들의 다양성을 받아들여 편견을 줄이는 인권교육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혐오표현 예방교육 보완·대항문화 활성화 필요

보고서에서는 아직 우리 사회가 혐오표현 예방교육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혐오표현 예방교육이 인성교육, 시민교육 등의 일부로 다루기보다는 편견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독립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혐오표현 예방교육의 예로는 미국의 비영리단체 ADL의 ‘No Place for Hate’ 프로그램이 있다. 학생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편견과 혐오가 어떻게 폭력으로 발전하는지 탐색하도록 하고 이에 대항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김 연구위원은 청소년들이 혐오표현을 들었을 때 대항표현을 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도 했다. 대항표현은 혐오표현에 맞대응해 혐오를 무력화하는 방법이다.

그는 “한국사회는 부당한 피해를 본 개인이 항의하기보다 조직을 위해 참고 수용하기를 바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청소년들이 대항표현을 하기 위해선 부당한 일에는 목소리를 내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교사도 "교내 혐오표현 사용을 줄이기 위해선 학생들이 누군가 혐오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들었을 때 '옳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대항문화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냅타임 권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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