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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여성 배려해 기준 낮췄다는 경찰 체력시험 사실일까?

[이데일리 박두호 기자] 최근 인천과 양평에서 일어난 흉기 난동 사건에서 경찰의 부실 대응 논란으로 경찰 체력 시험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체력 검정을 성비를 맞추겠다는 정치적인 목적에서 자격 조건을 둘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치안 업무 수행 능력을 확인해야 한다”며 현재 경찰 채용 과정을 비판했다.

2019년 대림동 사건에서 여성 경찰관이 주취자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했다는 오해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사실로 퍼지고 있어 여경은 신체적으로 남성에 비해 불리해 경찰에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 캡쳐 사진.


지난 19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2023년부터 변경되는 경찰 공무원 채용 시험에서 체력 평가 기준을 여성 기준으로 바꿔 체력이 하향 평준화가 될 것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게시글에는 기존 경찰 체력 시험인 1000m 달리기, 100m 달리기, 윗몸 일으키기, 팔굽혀 펴기, 좌우 약력 시험이 폐지되고, 2023년부터 순환식 체력 시험인 범인 추격, 피해자 구조, 밀고 당기기, 장애물 넘기 등으로 변경된다는 도표가 등장한다.

글 게시자는 “체력시험이 여경 기준으로 하향평준화 돼 남경도 여경 체력급이 뽑힐 예정”이라며 “중학생 체력이면 경찰보다 강하다”고 조롱했다. 기준이 하향돼 체력이 부실한 사람도 경찰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이 게시글 조회수는 14만이 넘었다.  2023년부터 변경되는 경찰 체력 시험이 정말 기준을 하향조정하는 것인지 확인해 봤다.

변경된 경찰 시험은 하향 평준화일까? → 거짓
2023년에 시행되는 순환식 체력검사는 4.2kg의 조끼를 착용하고 5가지 종목을 모두 수행한 완주시간을 측정한다. 장애물코스 달리기, 장대허들넘기, 32kg 기구를 당기고 밀면서 반원을 그리는 당기기·밀기, 72kg 모형 인형을 이동하는 구조하기, 방아쇠당기기까지 완주하는데 4분 40초 이내에 들어와야 합격이다.

현재 체력시험은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좌우 약력, 팔굽혀펴기 등 기초 체력시험을 보는데 남녀의 기준이 다르다. 1000m 달리기에서 여자 기준으로 10점 만점을 받은 기록은 남자 기준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는다.

여자는 팔굽혀펴기 시험에서 무릎을 대고 시험을 치른다.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확산된 ‘여경 무용론’의 주요 근거 중 하나다.

체력시험에서 100m 달리기를 뛰고 있는 지원자(출처=뉴스1)


순환식 체력검사의 특징은 남자와 여자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 평가방식은 기존의 체력검정보다 직무 관련성이 높다.

순환식 체력검사는 2023년에 경찰대학생, 경찰간부 후보생, 경찰행정학과 경력 채용 등 일부만 시행하고 2026년부터 순경을 포함해 전면 시행한다. 또 2023년부터는 남녀 경찰관을 따로 뽑는 것이 아니라 통합해서 선발하기 때문에 남녀 구분 없이 채용 절차를 밟는다.

순환식 체력검사가 경찰 체력을 하향 평준화할 것이란 주장은 ‘거짓’이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신임 경찰관 체력검사 방법 및 기준 개선에 관한 연구’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순환식 체력검사에서 합격 기준을 5분 10초로 했을 때 남자 응시생의 합격률은 96%, 여자 응시생의 합격률은 11%로 예측됐다. 2023년에 시행되는 순환식 체력검사는 기준이 5분 10초보다 30초 빠른 4분 40초이기 때문에 응시생들의 실제 합격률은 더 낮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 출신 전문가들은 바뀐 체력 시험이 오히려 직무 연관성이 높고, 경찰 체력이 하향평준화할 가능성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박선영 목원대 경찰학과 교수는 “순환식 체력 시험은 연구 용역을 통해 나온 과학적 분석”이라며 “서울대 체육학과 학생들의 1년 동안 체력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기준을 세운 것인데 기준이 결코 낮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어서 “팔굽혀펴기 1개, 달리기 0.1초 먼저 들어온다고 경찰에 적합하다고 볼 수 없으며, 근력 기준은 하향됐다고 비판할 수 있으나 팔굽혀 펴기는 신체적으로 여성들이 불리한 시험이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이를 성차별로 보고 직무 관련성 시험으로 바꾸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직무 관련성이 높은 체력 시험을 채택했다.

김필승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도 “순환식 체력검사는 미국 NYPD(뉴욕 경찰국)를 모델로 한 것인데 이는 직무 관련이 비교적 높은 체력 시험으로 이 평가도 상당한 체력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달리기를 해서 무거운 물체를 옮기는 등 전체적인 체력을 보는 시험”이라며 “오히려 지금의 체력 시험이 경찰의 자질을 판단할 수 있는 평가로 보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인천 경찰 도주는 체력이 아닌 자질 문제
또 전문가들은 인천 사건의 핵심은 경찰의 체력이 문제 아니라 현장대응능력 부족이거나 사명감의 문제라고 했다.

박 교수는 “인천 사건에서 여자 경찰관은 임용된 지 6개월 밖에 안됐는데 고참인 남자 경찰관도 똑같이 현장에 못 들어간 것을 두고 여경 무용론이라 하는 건 그동안의 선입견이 작동한 것”이라며 “여경도 대처를 못한 것은 맞으나 이를 체력 기준 미달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체력보다 경찰로서 사명감이 부족하고 훈련이 안 된 상태에서 현장에 나가 대응 능력이 부족한 것”이라 답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 관할 경찰서에 도착해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모습. (출처=뉴스1)


이 교수는 “인천 사건에서는 여자 경찰관이 아니라 남자 경찰관이 문제”라며 “막 임관한 경찰관은 고참 경찰관에게 붙여서 함께 현장 대응을 해야 하는데, 여자 경찰관은 사건이 벌어진 2층에 있고, 남자 경찰관은 1층에 따로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소리가 났을 때 1층에 있던 피해자의 남편이 올라갈 때도 남자 경찰관은 올라가지 않았고, 2층에서 내려온 여자 경찰관의 말을 듣고도 남자 경찰관은 현장에 가지 않았다”며 “이는 19년차나 경찰관의 현장대응능력 문제다”라고 비판했다.

층간 소음으로 갈등을 빚던 이웃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러 구속된 A씨. (출처=뉴스1)


전문가들은 경찰의 현장대응능력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경찰이 된 후에 체력 관리와 함께 무도 교육을 더 많이 받아서 범죄자를 제압하는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켜야 한다”며 “칼을 들고 위협하는 범죄자를 제압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찰이 강력 대응을 할 수 있게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교수는 “불법행위를 한 범죄자를 경찰이 과감하게 대응하면 잘했다고 해야 되는데 내부에서는 강력 대응하다 상대가 다치면 경찰은 감찰 조사를 받는 등 오히려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런 내부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현장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경찰에게 과감한 인사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작 현장 대응력을 강화하려고 테이저건(발사형 전기충격기)을 도입했지만, 훈련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현장 경찰 6만 7000여명 중에서 테이저건 사격 훈련을 받은 사람은 7314명 뿐이다.

테이저건 사격 훈련을 하기 어려운 이유는 값비싼 테이저건 카트리지 가격에 있다. 테이저건을 한번 발사하면 교체해야 하는 카트리지 가격이 개당 4만원 가량이다.

이 교수는 “예산을 과감히 투입해서 경찰들이 매년 권총 사격 뿐 아니라 테이저건 사격도 훈련받아야 한다. 테이저건 사격 훈련을 인사 평가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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