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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싸게 사는 게 죄?" 단통법, 또 졸속 개정하나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찍어보세요"

신도림 테크노마트에서 스마트폰을 살 때 가격을 말해선 안된다. 염두에 둔 가격을 계산기에 '찍어서' 대화해야 한다. 단통법 위반상황을 녹취해 포상금을 챙기는, 이른바 '폰파라치'를 경계해서다. 현재 폰파라치 제도는 잠정중단됐지만 계산기 대화는 이 곳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신도림 테크노마트 9층에는 스마트폰 판매점들이 150개도 넘게 즐비하다. '계산기 대화'는 이 곳의 문법이다.


판매점들은 각자 '최저가'·'파격특가'지만, 정확히 얼마인지는 적혀있지 않다. 단통법 한도를 넘어선 불법지원금을 준다는 사실을 숨겨야하기 때문이다. 계산기를 통해 가격을 흥정할 수 있다.

기자가 찾은 Z플립3 최저가는 20만원. 단통법이 허락하는 지원금 한도 7만2000원보다 50만원 가량 더 받는 셈이다. 판매직원은 "오늘 많이 싸게 사시는 거에요. 날씨(스마트폰 시세를 일컫는 은어)가 좋아서"라고 말했다.

15%->30% 개정안..."현장과 동떨어진 졸속"

이 풍경이 '단통법' 개정안에 실효성 지적이 잇따르는 배경이다. 지난달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스마트폰 구매 시 지급할 수 있는 추가지원금을 현행 15%(공시지원금 대비)에서 30%까지 상향하는 것이 골자로, 불법지원금 양성화가 목적이다. 갤럭시Z플립3를 예로 들면 (SKT, 5GX프라임 요금제 기준) 추가지원금은 7만2000원에서 14만4000원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졸속 개정'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미 불법지원금 수준이 이미 30%를 초과하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단통법은 스마트폰 판매처간 가격차 완화를 위해 추가지원금에 한도를 정했다. 그러자 감시망을 피해 불법지원금을 지급하는 판매점·웹사이트가 알음알음 생겨나 '아는 사람만' 싸게 구매할 수 있도록 음지화됐다. 음지화된 판매처에서 이미 고액의 불법지원금이 판치는데, 30% 상향안은 현장과 동떨어져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오프라인 판매처는 신도림과 강변 테크노마트에 모인 '성지'들이다. 불법지원금을 통해 일반대리점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지'로 불린다. 지난 29일 신도림 테크노마트의 Z플립3 시세는 20만원대로, 고가요금제 유지 등 조건을 제외하고 단순 지원금을 계산하면 대략 50만원 선이다. 공시지원금 대비 100%도 넘는 금액이다.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스마트폰 판매전문 카카오톡 채널. 커뮤니티 링크를 통해서 접촉할 수 있다.


온라인에선 더욱 폐쇄적으로 운영된다. '뽐뿌'와 '알고사'는 스마트폰 시세 공유가 주 목적인 온라인 커뮤니티다. 은어로 초성 암호를 사용하며 스마트폰 '날씨(시세)' 정보를 공유한다. 카카오톡·네이버밴드 등 채팅채널은 한층 더 음지화돼있다. 지인 초대나 커뮤니티 링크를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다. 한 스마트폰 판매전문 카카오톡 채널의 시세표를 보면, 대부분의 기기에서 개정안 30%를 훌쩍 넘는 지원금이 확인된다.

위반은 꾸준·과징금은 하락...'무용론'까지

나아가 '단통법 무용론'도 다시금 고개를 든다. 불법지원금을 근절하지 못했고, 오히려 음지화를 진행시켜 소비자간 정보격차를 발생시켰다는 비판 속에다. 단통법은 매년 소비자에게서 '싸게 사는 게 죄냐', 판매직원에게선 '싸게 파는 게 죄냐'는 불만에 부딪혀왔다.

당장 이동통신3사(SKT·KT·LG)부터 단통법을 큰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 시행 7년째임에도 단통법 위반은 꾸준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실에 따르면, 이통3사는 매년 단통법을 반복해서 위반하고 있지만 예상 매출 대비 과징금 비중은 2017년 2.7%에서 지난해 1.4%까지 줄어들었다.

지난해의 경우 각 통신사별 위반가입자당 과징금 수준은 1만원대에 불과했다. 변 의원은 "현 상황에선 법을 지키는 이득보다 위반의 이득이 더 클 수도 있다"라고 꼬집었다.

(사진=연합뉴스)


법이 유명무실해지니 후발주자도 쉽게 뛰어든다. 지난해 7월 출시한 쿠팡의 스마트폰 대리점 사업 '로켓모바일'은 올해 10월 단통법 위반으로 제재를 받았다. 방통위에 따르면, 쿠팡은 총 4362명에게 단통법 한도를 넘는 지원금을 지급했지만 과태료는 1800만원에 그쳤다. 업계관계자는 "쿠팡 정도 되는 빅테크 기업이 시행한지 7년된 단통법을 고려하지 않았겠나, 알고도 '찔러 본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는 "(이번 개정안은) 실효적 효과를 담보할 수 없다. 단통법 운영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졸속 법안'이라는 오명도 우려된다"라며 "불필요한 법안이라면 폐지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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