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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성폭력 사건 이후…재학생 2천명 ‘엄벌탄원서’로 연대했다

[이데일리 염정인 인턴기자] 인하대 성폭력 사건은 ‘대학은 안전한가’에 대한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졌다. 가해자 김씨(20)는 지난달 15일 새벽 피해자를 성폭행한 후 추락해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돼 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고 있다.

수사 기관에서 진실규명과 별개로, 남은 이들은 피해자의 2차 가해를 방지하고 같은 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대책을 도출해야 한다. 교육부와 인하대는 △캠퍼스 야간 출입 통제 강화 △폐쇄회로(CC)TV 증설 △교내 학생 대상 성폭력 예방 교육 점검 △성폭력 예방 특별 교육 실시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인하대 학생들은 사건 이후 조치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난달 29일 이데일리 스냅타임이 직접 찾아 학교 구성원들에게 평가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물었다.

 

18일 인천시 미추홀구 인하대학교 캠퍼스 안에 '인하대생 성폭행 추락사' 피해자를 위한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현재는 철거됐다.(사진=연합뉴스)


 

인하대생들 “CCTV는 형식적, 상담 대응 긍정적

 

캠퍼스에서 만난 인하대 재학생 H씨는 사건이 ‘학교’에서 벌어진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H씨는 “대화는 나눈 적 없지만 가해자와 같은 동아리 소속이었다. 범죄는 내 주변에서 일어난다는 걸 실감했다”며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이러한 사고가 발생한 것은 너무나 유감이고 문제”라고 했다.

인하대 재학생들은 이번 교육부와 학교 측의 대책이 ‘형식적’이라며 비판했다. 권수현 인하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수석국장 직무대행(정치외교학·21)은 야간통행 금지 조치에 대해 “학교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학교 자체를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재학생 K씨도 학내 성폭력 사건은 캠퍼스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며 “출입구를 단일화하거나 CCTV를 추가 설치하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예방 특별 교육’에 대해서도 “형식적“이란 비판이 있다. 인하대 재학생 H씨는 “작년에도 성폭력 예방 교육은 있었다”며 “코로나19로 비대면으로 실시되어서인지 단순 영상 제공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번에 인하대가 공지한 성폭력 예방 특별 교육의 대상은 공과대학 학생들이었다. 이에 논란이 일자, 인하대는 “순차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 밝혔다.

인하대 관계자는 “이번 예방 교육은 기존 연 1회던 특별 교육을 연 2회로 늘린 것”이라며 “오프라인으로 실시했다”고 밝혔다. 한편 학생들의 참여 정도를 묻는 질문엔 대답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내놨다. 또한 교육 의무 사항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답했다.

반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대책도 있었다. 인하대 재학생 H씨는 ‘상담 지원’이 가장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평가했다. 인하대는 지난 7월 26일(금) ‘인하소식’을 통해 ‘인하대학교 구성원의 심리적 상처회복을 위한 지원 안내’를 게시했다. H씨는 “대면 상담이 어려운 학생들은 비대면 상담이 가능해서 좋았다”고 평했다.

인하대 관계자는 “교내 인권센터가 상담 지원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며 “학생들은 원하는 만큼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2차 가해 숙고하는 인하대 학생들

 

사건 이후 인하대 학생들의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숙의도 눈에 띈다. 당초 인하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가 게시한 초기 입장문은 추상적인 문장으로 큰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TF팀을 꾸리며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학생 K씨는 “비대위는 초기 부족한 입장문을 보여줬지만 이후 TF팀을 꾸리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고 했다.

인하대 학생 공동대응 TF는 사건 이후 △피해 학생에 대한 2차 가해 제보·접수 채널 마련 △가해자 엄정 대응 방안 △재발 방지 대책 협의 △민원 접수 등의 운영 방안을 안내했다. 총 40명의 학생들이 이 TF팀에 소속돼 있다.

학생TF 운영 관련 '인하광장' 게시글 캡쳐(사진=염정인 인턴기자)


 

권 국장은 “학교 본부가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학생회가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2차 가해를 막거나 탄원 엄벌 서명을 모으는 일은 학생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권 국장은 유가족분들이 언론보도가 2차 가해의 트리거가 되고 있는 현 상황을 매우 경계하고 계신다고 전했다. “좋은 뜻으로 근조화환을 보내주신다고 해도 언론보도가 되면 커뮤니티에선 그걸 2차 가해로 재생산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근조화환이나 추모 공간 철거도 모두 유가족분들 의견을 따랐다”고 설명했다.

한편 권 국장은 인하대의 익명의 학생들이 게시한 대자보에 대해서도 “좋은 뜻이어도 2차 가해가 우려된다”고 답했다.

반면 재학생 H씨는 이 대자보에 대해 “용기 있는 행동”이라 말했다. 그는 “대자보를 게시하기 쉽지 않은 학내 분위기 속에서 여성 학우들의 목소리를 접할 수 있어 의미가 컸다”고 전했다.

 

재학생 2천명 엄벌탄원서작성

 

가해자의 ‘엄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재학생 K씨는 “모두 가해자의 엄벌을 원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권 국장 역시 “현재 엄벌탄원서 서명에 약 2천 명의 생들이 참여했다”며 가해자 엄벌에 동의하는 여론이 강하다고 밝혔다. 이어 “사건이 터지고 학생 개개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을 느낀 것 같다”며 “탄원서 서명이 학생들의 무력감 해소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타 학교 학생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 등 여론이 아닌 ‘진짜 학생 자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내놨다. 작년 11월까지 학내 성평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중앙대 재학생 B씨는 “20년도 이후 비대면 상황이 2~3년간 지속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커졌다”며 “확대운영위원회, 중앙운영위원회, 총학생회 등 기존 오프라인 공동체엔 학생들이 2019년만큼 많이 모이지 못하고 있다. 학생자치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B씨는 “익명 커뮤니티는 단순히 손가락을 몇 번 타이핑하는 것만으로 의견을 내고 발언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며 대학 사회엔 “의견을 주고받을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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