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세대를 위한 뉴스

snaptime logo

임신중지 약물 암거래 되는데...여전히 낙태죄 입법은 '멈춤'

[이데일리 염정인 인턴 기자]지난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21년 1월 1일부로 일명 ‘낙태죄’ 처벌 조항은 사라졌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점이 문제다. 계속되는 입법 공백 속 임신중절에 관한 ‘권리보장’ 문제는 어떻게 남겨져 있는지 들여다봤다.

17일 오전 11시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출범식 모습(사진=염정인 인턴 기자)


 

낙태죄 폐지 다음은 권리보장

 

지난 17일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이하 모임넷)가 “낙태죄가 비범죄화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권리보장에 관한 국회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을 비판하며 출범 소식을 알렸다. “낙태죄 폐지 다음은 권리보장”이라며 ‘낙태죄 폐지’를 이끌었던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하 모낙폐)의 후신임을 밝혔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의 나영 대표는 입법 공백 문제를 두고 “정부나 국회, 보건의료 기관 등이 낙태죄 비범죄화에 따른 공적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발생한 책임의 공백으로 인한 것”이라 비판했다.

이날 ‘모임넷’은 △임신중지 관련 의료행위에 건강보험 전면 적용 △신속한 유산유도제 도입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 체계 구축 △종합 정보 제공 시스템 마련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보장을 위한 법체계 마련 등을 요구했다.

이러한 상황 속 여성들은 낙태죄 비범죄화로 인한 사회적 변화를 체감할 기회가 적었다고 말한다.

2021년 ‘모낙폐’의 심층 인터뷰 보고서에 따르면 임신중지 경험이 있는 L씨(33)는 “달라진 게 많이 없다”고 답했다. “예전엔 음지에서 쉬쉬하는 분위기였다면 요즘엔 (임신중지를) 오픈할 수 있는 정도지 안 하던 병원이 해주는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임신중지 경험이 있는 G씨(30)도 “이제 협박받거나 신고당하는 사람이 없겠구나 싶은 정도다”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어떻게 정보를 접해야 하나 여전히 우려된다”고 답했다.

 

법제도 정비 중 미프진 중요

17일 오전 11시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출범식 모습(사진=염정인 인턴 기자)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김선혜 교수의 ‘약들을 둘러싼 한국의 재생산 정치-미프진 도입의 의미와 과제’를 보면, 한국에선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기점으로 유산유도약에 관한 논의가 시작됐다고 한다.

김 교수는 “임신중지와 관련된 법제도 정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과제 중 하나가 유산유도약의 도입”이라 설명했다.

유산유도약은 흔히 ‘미프진’이라 알려져 있는데 이는 약물적 임신중지에 해당한다. 이는 기존의 수술적 임신중지인 소파술이나 흡입술과 같은 침습적인 방식의 임신중지와는 달리 약물을 복용해 자연유산을 유도함으로써 임신을 종결시키는 방식이다.

위 논문은 병원에서 임신중지시술을 받기 어려운 사회‧제도적 상황이라면 여성들은 인터넷을 통해 약물적 임신중지를 알아보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임신중지가 엄격히 제한된 상황에서 미프진은 임신중지를 필요로 하는 개인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차선책이자 마지막 보루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임신중지율은 감소하고 있으나 약물적 임신중지의 비율은 증가하고 있다. 2017년 약물적 임신중지는 전체 임신중지의 39%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2014년 이후 25%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짜약의 유통과 제대로 된 복약 정보의 부재는 여성들의 재생산 건강권 침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설명돼 있다.

 

미프진 온라인 거래정품은 안전?

 

실제 기자가 온라인을 통해 미프진 구매를 찾아본 결과 어렵지 않게 판매자를 만날 수 있었다. SNS에 ’#미프진 양도‘를 검색하니 1시간부터 하루 전까지 최근 올라온 게시글이 많았다. 가격은 10만 원 후반~30만 원까지 거래되고 있었다.

SNS에 #미프진 양도를 검색한 화면(사진=트위터 캡쳐)


 

또한 정품임을 내세우는 글이 많았다. 보통 포장 상자나 설명서를 함께 갖고 있다고 강조해 판매했다. 네덜란드 비영리 시민단체 위민온웹으로부터 미프진을 받은 경우엔 기부금 내역이나 메일 내역을 인증하겠다고 했다.

정품 인증까지 올라오는데 온라인을 통한 미프진 구매는 안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스탭타임이 직접 물어본 결과 전문가들은 “그렇지만은 않다”고 답했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이동근 활동가는 “의약품 사용 약사 입장에선 정품은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며 “국가마다 품질관리에 관한 기준이 다르기에 인도에선 정품이어도 다른 나라에선 가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SNS 거래에서 정품 인증을 확인하는 것은 의미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정품 미프진이라고 개인 간 온라인 약물 거래를 통한 임신중지가 안전하냐는 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약물적 임신중지의 안전성은 여러 나라에서 입증됐다”며 “중요한 것은 안전한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를 어떻게 공공의료로서 보장하냐 이다”라고 답했다.

 

공적인 의료체계 안에 임신중지가 포함돼야

 

이 활동가는 “식약처가 우리나라 여성들이 먹는 약품의 안전성을 명확히 안내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식약처가 품질관리를 하지 않는 현 상황에선 온라인 약품 거래보단 안전 교육을 하는 산부인과를 찾아가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현재까지 주관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기존 형법의 낙태죄 조항을 대신할 입법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미프진을 도입할 계획이 없다고 밝혀왔다.

김 교수는 “감기와 같이 비교적 증상이 경비한 질병의 경우에도 쉽게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며 “임신중지도 마치 하나의 의료서비스로 여겨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임신중지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은 의료보험과 같이 공적인 의료체계 안에 임신중지가 포함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