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세대를 위한 뉴스

snaptime logo

대구 인쇄거리의 ‘눈물’… 디지털시대에 밀린 인쇄업자들

[이데일리 김지혜 인턴 기자] 신년이면 북적이던 대구 인쇄거리가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조용해졌다.

대구 남산동 인쇄거리에 몰려 있는 인쇄소들의 모습.  대낮이지만 사람들이 없어 한적하다. (사진=김지혜 인턴 기자).


 

서울, 대전을 비롯해 '3대 인쇄거리'로 손꼽히는 '대구 인쇄거리'를 이데일리 스냅타임이 찾아가봤다.  3대 인쇄거리라는 명색이 무색하게도 대구 남산동 인쇄거리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남산동 인쇄거리에 사는 주민 S씨(54)는 "원래 신년이면 바쁘게 돌아가는 인쇄기 소리로 시끄러웠는데 어느 순간부터 인쇄거리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줄어들었다" 며 "출판·인쇄가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양산업이 된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남산동 인쇄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신풍종합인쇄소'를 운영하고 있는 박승현(71·남), 김맹희(67·여)씨. 이들은 최근 인쇄소를 찾아주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겨 3개월 후 인쇄소의 문을 닫는다.

대구 남산동에서 '신풍종합인쇄소'를 운영중인 김맹희(67), 박승현(71)씨의 모습 (사진=김지혜 인턴기자)


 

박승현 씨는 "인터넷 발달 때문에 장사가 너무 안 돼서 하루하루가 감당이 안된다" 며 "옛날에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가장 바쁜 1월 1일에 장사를 하면 돈 욕심이 많은 사람들처럼 보일까 봐 인쇄소 문을 닫고 몰래 일할 정도였다"라고 이야기했다.

박 씨는 "옛날에는 동사무소나 은행에서 쓰는 자료들도 우리가 다 인쇄해 줬는데 요새는 (태블릿 PC에) 사인 하나면 되니까 인쇄소가 뭐가 필요하겠냐"며 "그나마 목욕탕 창구에서 쓰이는 출입증 같은 게 우리의 유일한 수입창구였는데, 이것마저 코로나 이후로 사람들이 목욕탕을 예전만큼 가질 않으니 수입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신풍종합인쇄소'에  있는 인쇄기의 모습. 신년이면 바쁘게 작동하던 인쇄기의 전원이 꺼져있다 (사진=김지혜 인턴 기자).


 

김맹희 씨는 대구 인쇄거리가 쇠퇴해 가고 있는 원인에 대해 "가장 큰 문제는 서울에 큰 기업들이 모두 몰려있으니 대구에는 남으려고 하는 청년들이 없는 것이다" 며 "유일하게 (대구에) 있는 청년들 마저 휴대폰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니까 인쇄업체가 쇠퇴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밖에 나가기만 하면 문 닫고 있는 점포들이 많아져서 소름이 돋는다" 며 "우리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디지털 기기를 배우려 했지만 나이도 많고 체력이 안 따라줘서 결국 우리도 가게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라고 덧붙였다.

남산동 인쇄거리 인근에 위치한 대구 동산동 인쇄거리의 모습. 인쇄소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사진=김지혜 인턴 기자)


 

이러한 상황 때문에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는 인쇄업체도 있다.

대구 동산동에 위치한 인쇄업체 '세명기획' 사장 박기숙(62·여) 씨는 “우리도 전체 물량이 작년대비 50% 줄었다” 며 “그래서 우리는 그래픽 디자인을 통해 칼라 명함이나 카탈로그 등을 제작하면서 말 그래도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 씨와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 A 씨는 “우리는 젊은 청년들 취향에 맞춰 차량용 달력이나 한 장에 다 보이는 달력을 위주로 만든다” 며 “그런데 요새 어르신들이 시중에서 큰 달력을 구하기 어려우신지 자주 가게에 방문하신다” 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A 씨는 “어르신들은 달력을 사은품이라고 생각하지 돈 주고 사실 생각 자체를 잘 안하신다” 며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달력을 보거나 손쉽게 달력을 주문하는 청년들과 비교하면 요새 노년층들에게 달력 구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라고 덧붙였다.

'세명기획'서 제작한 한눈에 보이는 달력. 청년들을 타게팅으로 제작했지만 수요가 많지 않다. (사진=김지혜 인턴 기자)


 

 

시중에서 달력을 구하기 어려워진 것은 그동안 연말 '달력 특수'를 누려왔던 인쇄업체의 물량이 줄었다는 의미다. 또한 스마트폰에 익숙지 않은 노년층에게는 달력을 구하기 어려운 '피해'로 돌아왔다.

대구 남구에 거주 중인 방순국 씨(81·여)는 해마다 단골은행서 달력을 얻어왔다. 하지만 올해에는 구하지 못했다. 방 씨는 "작년에는 은행에 가면 달력을 3개 정도 공짜로 얻을 수 있었는데 이번엔 작은 탁상용 달력 하나도 겨우 얻었다" 며 "이제는 은행에서도 달력을 안 주니 어디에서 달력을 구해야 하는지 난감하다"라고 토로했다.

은행 달력의 경우 벽에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는 속설 때문에 더욱 인기가 많다. 하지만 스마트폰 확산으로 종이 달력 공급량이 줄면서 은행 외에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적은 지방에서는 달력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실제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올해 달력 제작 부수는 505만 부로 지난해보다 4만 부 줄었다. 이에 대해 은행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경영(ESG)을 추진하면서 종이 달력 제작을 해마다 줄이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공유하기